'애프터썬'이라는 단어는 애프터선 로션이라는 말에 흔히 쓰입니다. 강한 볕에 그을린 피부를 진정시키고 회복을 돕기위해 바른다고 해요. 애프터썬이라는 말로 떼어놓고 보면 밝은 햇빛 아래서 야외활동 시간을 가진 후라는 뜻 정도로 풀이할 수 있을 겁니다. 이 말처럼 영화의 많은 부분이 휴가지의 태양 아래서 시간을 보내는 주인공들의 모습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마치 아빠와 딸의 튀르키예 여행을 기념하는 앨범 같은 영화, [애프터썬]입니다.
앨범과 기록
영화를 보고 다른 관객분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에서나, 평론가분들의 글을 찾아보았을 때, 겹쳐지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장면 장면이 사진과 같은 인상을 준다는 것, 그리고 그런 기록들이 모여 페이지가 넘어가는 앨범 같다는 것. 이 영화를 앞으로 보실 분들에겐 그 감성이 특별하고, 그 순간의 인상을 잘 담아낸다고 영업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이미 보신 분이 불만족스러우셨다면, 감독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방법이라 장면 사이에 서사나 개연성이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고도 살짝 귀띔드릴 거구요.
이야기 드린 것처럼 영화는 휴가지의 인상을 충실하게 담아냅니다. 소피는 아빠인 캘럼과 휴양지에 온 조숙한 꼬마인데요. 소피의 눈에 비친 인상을 표현하기 위해 배경이 주는 장면의 밝기, 그 안의 색조가 차가울지 따뜻할지가 섬세하게 조율된 것이 느껴집니다. 구석구석 등장하는 소품들의 색깔과 효과음들도 그런 감상을 더하구요. 무엇보다 이런 방법 덕에 화면엔 아빠와 딸 사이에 가려진 것들의 인상도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소피가 캘럼과 보낸 즐거운 시간은 주로 한 낮의 시간대에 밝은 색을 배경으로 한다거나, 그 사이 캘럼이 홀로 등장하는 장면은 밤 시간대에 어둡고 푸르스름한 빛으로 나타난 것처럼요. 특히 부녀의 휴가를 담기 위해 촬영된 캠코더 영상이 사이사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 시절 중요한 행사때마다 들고나간 캠코더라는 친숙한 포맷에 담긴 소피의 밝은 모습은 생동감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인상을 남기죠.
시선의 앞, 뒤, 이음매
이렇게 영화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소피의 시선이 닿는 아빠에게 관객의 시선도 자연스레 머물게 됩니다. 캘럼이 언뜻언뜻 보여주는 특별한 행동들, 그리고 혼자일 때 드러나는 흔들림이 더 빈번할수록 더욱 그의 속이 신경쓰이게 되죠. 하지만 리조트의 파티에서 캘럼과 소피가 함께 추는 춤을 끝으로 부녀의 휴가는 큰 탈 없이 막을 내립니다. 그렇게 캘럼의 배웅을 받으며 밝게 웃는 어린 소피의 모습에 화면은 멈추죠. 그리고 이젠 어른이 된 소피가 캠코더 속 그 마지막 화면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부터 사이사이 짧은 시간 훗날 소피의 얼굴이 비칩니다. 하지만 사실상 관객이 알 수 있는 단서는 희미하죠. 다만 영화의 막바지에 등장해서 영화를 보는 방향을 바꿔놓을 뿐입니다.
공항 복도로 보이는 곳에서 캘럼은 작별인사를 하는 소피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캠코더에 담습니다. 어른이 된 소피가 마지막으로 돌려볼 수 있는 시점은 여기까지입니다. 소피를 보내고 녹화를 멈출 때까지 캠코더 렌즈 뒤편의 캘럼은 결코 녹화에 담기지 않습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가 들이붓는 감정은 단절감입니다. 훗날 어른이 되어 옛 휴가의 기록을 돌려보던 소피에게도 그렇지만, 아빠와 딸의 관계를 조마조마 바라보던 관객에게도 그럴 거구요. 그렇게 캘럼은 뒤를 돌아 복도 끝 어둡고 반짝이는 공간으로 사라집니다.
시선의 반대편을 상상하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영화의 그늘에서 관객들은 자연스레 캘럼과 어른 소피의 입장을 상상해보게 됩니다. 마치 영화의 초반, 클럽으로 보이는 곳에서 사람들이 춤을 추는 장면들로 거슬러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곳에서 어른이 된 소피가 춤을 추는 과거의 캘럼을 마주하는 모습은 불가능해 보이죠. 여기서 훗날 현실의 소피가 캘럼을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암시가 관객에게 떠오릅니다. 동시에 소피가 마주한 것은 캠코더 뒤편의 캘럼이라는 낌새까지도요.
녹화 중인 캠코더가 담는 프레임 바깥의 순간들은 훗날 재생시켜볼 수 없습니다. 소피의 기억도 마찬가지죠. 직접 자리하지 못한 장소의 순간들은 훗날 직접 회상해낼 수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 커튼콜에서의 상영 후 한 관객분께서 귀띔해주신 점이 있었습니다. 사진을 감상하는 어느 순간에 감상자는 장면 그대로의 정보를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것과의 교류에서 개인이 재구성한 세계를 본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우리가 옛 앨범을 펼쳐 볼 때처럼, 어떤 장면이 감정을 흔들 때 우리는 그곳에 담기지 않은 순간들을 상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야의 안과 밖을 나눈 구별은 영화에서 아빠와 딸의 관계위로 포개어집니다. 캘럼은 캠코더를 끄고 켜면서 소피에게 남겨질 장면을 고르는 것 같습니다. 혹은 딸의 눈치를 보면서,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야 캘럼은 비어져 나온 우울을 뱉어내기도 하구요. 딸에게는 자신의 그늘을 가리고 밝고 행복한 휴가의 기억만을 남기고 싶은 욕심이 이런 구별의 바탕에 깔립니다.
훗날 소피는 여행을 회상하면서 어린 자신의 시선에 새겨진 인상들을 되짚습니다. 그리고 캠코더를 보면서는 과거의 자신을 비춘 아빠의 시선을 느끼구요. 그렇게 시선 바깥의, 혹은 반대편의 그늘 속 아빠를 마주하죠. 그리고 마주한 아빠가 휴가지에서 뱉어냈을 우울에 어른이 된 소피는 다시 시선을 가져다대었을 겁니다.
해가 진 후에.
감독의 첫 장편인 이 영화는 감독의 자전적인 경험을 모티브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이러나 저러나 샬롯 웰스 감독은 영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다분히 감독님의 의도대로 캠코더 바깥으로 보이는 캘럼과 소피의 모습들에서, 이번엔 관객들이 그 시선의 반대편을 상상하게 될 겁니다.
소피가 떠올릴 수 있었던 아빠, 캘럼의 몸짓들은 실제와는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르면 어긋나는 걸까요? 춤을 추고 있는 캘럼을 마주한 어른이 된 소피는 아빠를 밀쳐 버립니다. 자신이 기대했던 모습과 달라서 였을까요? 자신에거 꽁꽁 숨긴 그늘에 서운했던 걸까요, 아니면 미안한 감정이 터져나와서였을까요?
눈부신 낮의 시간이 지나가면 움푹 파여진 곳엔 그늘이 차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영화를 만나거나 주변의 사람을 바라볼 때 카메라의 프레임에 들어오지 않았거나 어두워 잘 알아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스스로 그곳에 시선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면 좋겠습니다. 한 번 또 한 번 바라보고 나면 우리의 시선이 그늘에 적응해, 흐릿하게나마 형체가 눈에 들어올테니까요. 그렇게 다시 날이 밝으면 주위가 조금 더 눈부실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