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즈키] 2009년, 지산 록페스티벌이 처음으로 열리고, 블러는 재결합을,
오아시스는 해체를 선언한 여름.
이 모든 것은 지방에 사는 중학생 수민에겐 멀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스즈키가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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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책갈피를 꽂아둔 사람 혹은 순간이 있습니다. <스즈키> 속 타인으로 인해 단단해진 취향을 소중히 안고 살아가는 수민의 이야기는 좋아했던 무언가가 생각나게 되고, 스쳐 지나갔던 계절들이 떠오르다가 결국 잊고 있던 사람을 떠오르게 만들죠. 마음속 한편의 추억을 꺼내보게 만드는 영화 <스즈키>의 안정민 감독님과 함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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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스즈키>는 졸업작품이다. 졸업을 앞두고 어쩌다 나는 이런 사람이 되었나 생각을 해보았다. 왜 전공으로 영화를 골랐는지, 왜 이런 작품들을 좋아하고 이런 노래를 좋아하고 이런 말투와 성격의 사람이 되었는지 거슬러 올라가다보니 나에게, 지금 내 모습의 기점을 고르라면 인터넷이었다. 어렸을 때 인터넷에서 접한 것들, 만난 사람들, 그들이 추천해준 것들. 그런 것들이 티나지 않게 계속 내 안에 쌓이고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다.
세상에 수많은 취향 중 '락'을 소재로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밴드가 나오는 영화를 찍고 싶었다. 밴드 멤버로 살아본 적은 없으니 밴드 음악을 소비하고 즐겨듣는 인물이 주인공이면 나도 신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음악에는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기간 동안 자주 듣던 음악을 오랜만에 다시 들으면, 그때 당시의 기억들과 사람들이 떠오르는 경험은 다들 있을 것이다. 음악을 소재로 사용해서 그런 효과를 주고 싶었다.
많은 음악 장르 중 '펑크 록'을 엔딩 곡으로 고른 이유는, 마구 발산하고, 소리 지르고, 슬프고 우울하고 찌질한 감정마저 신나게 소모해버리는 그런 장르가 펑크 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이러니함이 영화와도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등장인물이 모두 학생이다. 캐릭터 구상의 배경은 무엇이었나.
주인공 수민의 경우엔 나의 어렸을 때의 모습, 혹은 내가 되고 싶었던 모습, 그리고 수민 역의 정다원 배우의 실제 모습이 모두 섞여 있다. 말수가 없지만 좋아하는 건 확실한 사람. 하지만 어려서 철이 없기도 하고, 그런 모습이 좀 귀엽기도 한 그런 캐릭터이길 바랬다. 수민의 동네 친구인 지현과 준서의 경우엔 다들 겪어봤을 주변 사람의 모습으로 최대한 만들고 싶었다.
같이 노는 남자애를 몰래 좋아하며, 괜히 그 애의 잦은 연애가 신경쓰이는 여자아이와, 몇 주 간격으로 여자친구가 계속 바뀌지만 계속 거기서 거기인, 축구를 좋아하는 남자아이. 사실 생각보다 다른 두 캐릭터의 의상이나 인물소품에도 공을 많이 들여서, 잘 보면 지현은 <꽃보다 남자>의 구준표 굿즈를 많이 들고 있다. 관객들이 지현과 준서를 보면서 과거 알던 누군가 혹은 과거 자기 자신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배우들의 섭외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나. 모두 그 시절 존재했던 학생들 같았다.
주인공 수민 역할의 정다원 배우의 경우, 재작년에 미술감독으로 참여한 이루리 감독의 <소년유랑>이라는 작품에서 만났다. <스즈키>의 초고는 지금 버전보다 훨씬 내 개인적인 경험이 더 많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주인공 무리도 여학생들이었는데, 다원 배우를 꼭 캐스팅하고 싶어서 수민을 여학생에서 남학생으로 바꿨다.
김이든 배우와 박준영 배우도 이전 친구들의 작품에 출연한 적이 있어서, 친구들의 작품을 보고 이미지가 맘에 들어 캐스팅을 했다. 다들 20대 초반에서 중반의 나이임에도 앳된 느낌이 나도록 연기를 잘해주어서 많이 감사했다.
촬영 당시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는지.
위 캐스팅에 이어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는데, 2024년의 성인이 된 수민 배우의 캐스팅이 고민이었다. 다원 배우와 닮았지만 좀 더 성숙한 느낌의 배우를 찾는 게
쉬운 일 같지는 않아서, 뒷모습이나 손 정도만 타이트하게 잡아서 최대한 숨겨야 하나 하던 와중에 학교 앞 카페의 창가 좌석에 앉아있다가 우연히 지나가던 지준형 배우를 봤다.
순간 다원 배우로 착각하고 인사할 뻔 했다가, 아! 저 사람을 캐스팅하면 되겠다! 라는 생각으로, 이후 또 우연히 학교 주변에서 마주쳤을 때 연락처를 받아 캐스팅을 진행했다. 마침 연기과였고, 일정도 가능했기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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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라는 인물이 굉장히 비밀스럽다. 캐릭터를 더 자세히 드러내지 않은 이유가 있다면.
인터넷에서 만난 인연들은 서로 얼굴도 신상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현실의 관계들보다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며, 인터넷에서 비슷한 취향의 사람을 찾기도 쉽다. 한편으로는 정말 친한 사이였지만 연락이 쉽게 끊기기도 한다.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근황이 궁금하거나, 못 다 한 대화가 남아 상대방을 찾으려 해도 찾기가 어렵다. 긴 시간이 지나 남는 것은 그들의 닉네임과, 인터넷에서 나눴던 추억 정도뿐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의 관계는 현실에서 맺을 수 있는 관계와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음에도 주고받을 수 있는 애정, 다시는 볼 수 없을 임의의 대상과의 대화 같은 것들에서 매력을 느꼈고, 그랬기에 '스즈키'의 경우에도 수민 뿐 아니라 관객에게도 비밀스러운 존재로 남기를 원했다.
스즈키라는 이름은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감독님만의 '스즈키'가 존재하는지 궁금하다.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인터넷에서 만난, 비슷한 취향을 가졌고 방과 후마다 즐겁게 인터넷으로 얘기하던, '스즈키'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시에 10~20대였으니 지금은 20대 후반에서 40대까지 되었을 거다.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처음엔 감사한 분들에 이 친구들의 닉네임을 적을까도 생각했었다가 관뒀다.
스즈키라는 이름은 어렸을 때 소통했던 인터넷 친구의 닉네임이다. 실제로 10대 초반의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소개해준, 어린 시절 가장 많은 빚을 진 친구지만, 나도 스즈키가 어떻게 사는지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영화의 결말이 무척 인상 깊었다. 스즈키의 죽음을 전해 들은 후 공연을 즐기는 듯한 수민은 슬퍼 보이기도 한다. 수민은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연기 디렉팅을 어떤 식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수민의 나이는 주변 사람, 더군다나 얼굴도 모르는 동경하는 사람에 대한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이른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 슬픔이 정확히 어느 정도 크기인지, 어떤 기분인지 제대로 정의할 수도 없지 않았을까. 죽음의 사전적 정의는 알아도, 누군가와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음의 감정적 파급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갑작스럽게 들은 죽음의 소식이 어떤 느낌일지를 떠올려 달라고 부탁했다. 마냥 슬픈 느낌보다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서. 정말 보고 싶었던 라이브 공연의 열기와 혼란스러운 감정, 이런 것들이 동시에 느껴졌으면 했다. 수민 역의 정다원 배우의 경우 원래 텐션이 낮은 편이고 표정에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사실 디렉팅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알아서 잘 해주신 느낌이다.
폰트, 라디오는 영화에서 과거와 현재를 구별하는 장치로 사용된 것인지.
누군가는 자신에게 스스로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가 어떤 기분인지, 그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 뿐이니까. 그래서 성인 수민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고, 다시 복기하면서 어린 자신을 달래는 느낌의 이야기가 되었으면 했다. 영화 중간의 타이핑되는 글들과 라디오 사연은 모두 성인 수민 입장에서의 나레이션이며, 이 이야기의 화자는 2009년의 수민이 아닌 2024년, 현재를 살고 있는 수민이다. 전달이 잘 되지는 않은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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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영화에 어느 정도 담겨있는지 궁금하다.
많이 담겨있다. 나도 중학생 때에 실제 엔딩씬의 로케이션이었던 FF에 좋아하는 밴드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고, 그 공연은 인터넷 친구가 추천해준 것이었기도 했고, 인터넷 친구를 만나기 위해 혼자 광역버스를 탔던 적도 있다. 지산 록페스티벌에 못 가서 슬프기도 했고, 길바닥에 붙어있던 헤진 락페 포스터를 몰래 떼와서 자습실에 붙여보긴 해도 엄마가 허락을 안 해주실까봐 아예 말을 못 꺼내기도 했고, 같이 놀던 친구들보다는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것에 대해 떠드는 것이 더 즐겁기도 하고, 이건 여전히 그렇다. (웃음) 갑자기 소식이 끊겨 사라져버린, 생사조차 모를 인터넷 친구의 안부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쯤 되니 감독님의 덕질목록이 궁금하다. 어떤 취향에 에너지를 가장 많이 쏟으시는지.
호시노 겐이라는 일본의 가수 겸 배우 겸 문필가를 덕질하는 데에 가장 큰 에너지를 쏟고 있다.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사람을 덕질을 하는 건 정말 힘이 나는 일인 것 같다. 그 외에도 애니메이션과 만화, 게임을 좋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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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대적 배경이 2009년이다 보니 미술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점이 궁금하다.
정말 그 당시 같아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레퍼런스 서치를 많이 했다. 인터넷에 남아있는 그 당시 거리와 사람들을 촬영한 영상들, 예능 속 모습들, 개개인이 올린 방 사진들, 그리고 내 사진첩에 남아있는 사진들 등 여러 사진들을 참고해서 소품을 모으고, 의상을 구하고, 그 당시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 로케이션들을 섭외했다.
소품을 구하고 로케이션을 섭외하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는지.
원래 00년대의 모습이나 감성을 좋아한다. <스즈키>를 찍을 생각이 없을 때부터 어릴 때의 향수가 느껴지는 공간들이나 가게들을 스크랩해둔 덕에, 로케이션 서치엔 큰 무리가 없었다. 원래 봐두었던 장소들 모두 흔쾌히 촬영에 응해주셔서 다행이었다.
소품의 경우에도 내가 갖고 있던 개인 소장품이 많다. 추가로 구매한 것들도 그냥 영화 촬영을 위해서라기보다도 사 모으고 싶던 것들을 산 느낌이다.
초록불꽃소년단 섭외 과정이 궁금하다.
원래 친분이 있는 것은 전혀 아니고, 시나리오와 기획을 디엠으로 보내드렸다. 다행히 흔쾌히 출연을 해주시겠다고 해서 일정을 맞춰 촬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라이브 씬에서의 관객들도 초록불꽃소년단 측에서 홍보와 섭외를 도와주셔서, 실제 초록불꽃소년단의 팬분들이 촬영에 참여해주셨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따로 참고한 영화가 있는지도 듣고 싶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영화들과 만화들, 그리고 뮤직비디오를 레퍼런스로 정해두고 프리 프로덕션을 진행했다. 룩 자체는 넘버 걸이라는 일본 락밴드의 과거 라이브클립이나 뮤직비디오를 닮고 싶은 마음이 컸고,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도 비중이 큰 레퍼런스였다.
화면에 타이핑이 되는 텍스트와, 현재를 사는 인물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구조는 <우리는 모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라는 영화를, 살고 있는 시골 동네에 지긋함과 권태를 느끼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그래서 우리는 풀장에 금붕어를> 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구체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컷을 구상하면서는 영화보다는 출판만화를 더 많이 참고했는데, <룩 백>이라는 만화와 <갯마을 소녀>라는 만화를 컷이나 수민 방의 구조와 미술 등에 많이 참고했다. 아무래도 메인 카메라가 무빙이 비교적 자유로운 캠코더였다 보니 스토리보드와 결과물이 꽤 달라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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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 후 관객들에게 들었던 후기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있는지.
어렸을 때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슬퍼졌다는 후기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내가 원했던 감상도 그런 거였어서. 관객 본인이 좋아하던 게 락이 아니었음에도, 본인의 경험이 떠올라 슬퍼졌다는 말들을 들으면 기분이 좋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각자의 누군가를 떠올리기를 바랬다. 인터넷 친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좋아했던 게 록이 아니어도, 그냥 어린 시절을 빚진 사람, 그런데 지금은 잊고 있거나 그냥 깊숙한 곳에 흔적처럼 남아있는 사람, 혹은 어느 시절을 떠올리기를 바랬다.
감독님의 전 작품들이 궁금하다. 주로 어떤 영화를 찍어오셨는지.
<스즈키>는 두 번째 작품이자 영화과 졸업작품이다. 이전에 <영화전대 춘화레인저>라는 단편영화를 촬영했었는데, 전대물을 직접 만들고 싶은 비디오 가게 사장 춘화가 영화과 학생의 도움을 받아 전대물을 만든다는 내용의 코미디다. 연출작은 이렇게 두 편이고, 이외엔 다른 지인들의 단편영화에 주로 미술감독으로 참여를 많이 했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듣고 싶다.
딱히 없다. 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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