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훗날에 21세기, 한국 고등학생, 수능, 고민… 이런 키워드로 어느 박물관에 특별전이 개최된다면 그 전시관은 이렇게 채워질까요? 7차 교육과정 이래 여느 소도시의 고등학교에서든 수험생 시절을 보내야했던 관객이라면, 아니 꼭 그렇지 않더라도, 영화가 쏟아내는 현실에 밀착한 화면에 고개를 주억거리실지 모릅니다. K-틴에이져 고고학 수업의 교보재 같은 느낌을 주는 영화, [성적표의 김민영]입니다.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감의 그물
영화에는 고3 시절을 거쳐 수능, 그리고 진학과 취업까지의 특별한 시기를 지나는 두 주인공, 정희와 민영의 친구 관계(넓게 보면 삼행시 클럽의 수산나 까지)가 한가운데 놓여있습니다. 오랜만의 재회하게 된 절친 사이를 담은 줄거리에서 외려 멀어져버린 서로의 시각이 미묘하게 드러나는데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며 애정하고, 기대하고, 또 한숨을 삼켜본 적이 있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가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리지 않을까 합니다.
이와 함께 곳곳에 등장하는 키워드는 ‘한국적인 것’. 영화를 본 동료들의 감상을 빌리자면 외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우리나라 관객들과 얼마나 다른 영화를 보게될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반도의 어느 기숙사 고3 라이프를 사찰한 듯한 영화 속 미술작업도 인상적이지만, 넓게는 수능-학점-편입으로 이어지는 배경과 가부장적 가족분위기도 살짝 숨어있는데요. 한국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유하는 이런 요소들이 인물을 여러 층으로 나눠 이해할 수 있는 바탕이 되어줍니다.
덧붙이자면 영화는 동시대의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희와 민영 주위로 때가 지난 듯한 소품들이 튀어나옵니다. 정희가 태어나기도 전에 방영했던 시트콤이나, 민영이 쓰는 노트북의 오래된 운영체제, 그리고 동영상이 녹화된 CD 같은 것들이죠. 이런 소품들 덕분인지 영화의 이야기는 꽤 넓은 시간대를 건너며 그 때에 속했을 관객들을 아우르는 느낌입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유-우머
한편으로 이 영화는 귀여운 블랙코미디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의 주요한 웃음 장치는 정희의 엉뚱함입니다. 삼행시 클럽 해체 후 수능까지 고등학교 시절, 정희가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테니스 클럽, 그리고 민영의 초대로 서울에서 이뤄진 재회까지 엉뚱하고도 실소가 새어나오는 장면들이 구석구석 등장합니다. 실제로 정희를 연출하기 위해 참고한 감독님의 옛친구가 있었다는(!) 뒷 이야기도 이후에 알 수 있었구요. 그 외에도 민영과 정희의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빼 놓을 수 없습니다. 무언가 날것의 감성이 들어간 연출들이 영화의 코미디가 느슨해질 때쯤 긴장감을 주는데요. 이런 장면들이 탄생하기까지 우연과 필연 사이의 비하인드가 있었다는 사실. 감독님들의 인터뷰에서는 영화만의 내적 웃음의 톤을 지키기 위해 코미디 연출을 직접적이지 않게 유지했다는 코멘트가 있었습니다. 정말 힘을 줘서 힘을 뺀(…) 연출이랄까요?
이렇게 슴슴한 웃음기가 함유된 장면과 삽화는 영화 전체적으로도 분위기가 너무 퍽퍽해지지 않게 유지해주는데요. 하지만 동시에 영화는 엉뚱하고 귀여운 장면들 사이사이에 쌉싸래함이 빠지지 않습니다. 민영의 클럽 해체사 낭독에서 시작된 영화는 수능이 끝난 저녁을 거쳐 첫 직장에서 잘린 정희를 맞는 반려동물까지, 곳곳에 무거움을 담는데요. 이런 변화구는 정희가 민영을 만나 함께한 장면에서도 이어집니다. 시트콤 형식을 빌려 정희의 바램을 그린 제주도 여행 장면의 들뜸은, 4차원 소릴 듣고싶냐는 민영의 되물음으로 한 순간 가라앉죠. 그 뒤로 묘하게 심각하지만은 않은 표정의 민영에게 정희가 쌓였던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이 따라붙고요. 이렇게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오르내리던 영화는 두 인물의 마지막 엇갈림을 향해 갑니다.
안에서 너를, 나를 보아주는 것
주인공 정희와 민영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캐릭터지만 엉뚱하거나 도드라지는 면모 때문인지 고립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습니다. 영화의 앞 부분에서 정희 나름의 소박한 취업은 정리해고라는 거절의 경험으로 이어지는데요. 거기에 덧대어 봤을 때 정희가 숲을 바라보는 장면과, 숲을 보며 한 생각을 민영에게 털어놓는 장면이 설핏 읽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의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한국인이 겪을 법한 고립이 정희의 심상을 빌려 그려진거죠. 어쩌면 앞서 민영은 이와 비슷한 감정을 가족들, 혹은 대학교 친구들 틈에서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뒤이어 정희가 그런 친구의 기록들을 들추었을 때 한 조각 자신의 모습을 엿보았을까 하는 상상도 해봄직 하구요.
감독님들이 뽑은 와닿는 대사 중, “밖이 아니라 안에서 나를 봐주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성적표에 담긴 민영을 설명하는 문장 중 하나인데요. 이와 동시에 영화의 줄거리는 정희가 민영을 들여다 보는 것에 가깝습니다. 정희가 남긴 저 설명은 허물없던 시절의 민영을 떠올리며 쓴 말이 될 수도 있겠죠. 이를 포함해서 정희가 남긴 성적표는 단순히 한 시점에 사람을 재단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과거에 알던 상대와, 미처 몰랐던 현실, 그리고 스스로의 기대가 반영된 애정어린 표현이죠. 이런 관점에서 엔딩에 다시 숲 속을 상상하는 장면에 등장한 인물이 민영의 얼굴을 빌린 것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민영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희는 어쩌면 과거입니다. 지나온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이지만, 청주라는 고향의 기억이기도, 자신이 가졌던 순수함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퇴화시킨 일부분이라고 해도 될까요. 친구에게 느낄 수 있는 거리감이란게 그럴지도 모릅니다. 이쪽과 저쪽 사이의 갈래가 아니라, 먼저 사라졌거나 여태 남아있는지의 차이 말이죠. 어느 쪽이든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엔 시차도 생기기 마련이구요. 그렇기에 영화 막바지에 정희가 남긴 성적표를 민영이 읽는 장면이 사뭇 뭉클한 것 같습니다. 미처 챙기지 못하고 남겨진 스스로가 먼저 떠나버린 자신에게 주는 성적표가 될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