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찾사’는 복학하고 처음 연출을 맡게 된 작품으로 알고 있다. 첫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코로나로 인해 영화 제작이 중단이 되고, 무력감이 들어 휴학을 했다. 휴학 기간 동안 무작정 돈을 벌었다. 영화를 찍어야겠다!라는 마음으로. 무슨 영화를 찍을까 고민하다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찍어보고 싶었다. 애니메이션 장르를 무척 좋아하는데 찍어보지 않는 것은 후회가 될 거 같았다. 그래서 맨땅에 헤딩하는 마음으로 미술감독님부터 찾아가서 꼬셨다.
‘우찾사’는 컷아웃 방식으로 제작된 애니메이션이라고 들었다. 컷아웃 애니메이션이 무엇인지, 어떤 식으로 촬영되는지 궁금하다.
먼저 컷아웃 애니메이션은 종이 위에 형태를 그리고 잘라낸 다음 각각의 종이들을 한 프레임씩 움직여 가면서 촬영하여 연속 동작을 만드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한 기법이다.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중에 가장 오래된 방식이라고 한다. 아크릴을 설치한 후 전경 중경 후경을 나눈 후, 콘티를 구성하고 어디서 어떤 식으로 배치하여 움직일지 의논하며 촬영하였다.
‘우찾사’를 제작할 때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우찾사’는 미술이 굉장히 중요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이 중요한 영화는 초장에 공을 들이지 않으면 편집할 때 후회할 것 같았다. 그래서 초반 작업 때는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썼다. 촬영 전날까지도 미술감독님과 캐릭터 보완에 힘을 썼던 거 같다. 촬영 때는 당장 컷을 붙여 확인할 수 없는 환경이라 편집감독님이 상시 현장에 붙어서 촬영에 임했다. 아마 모든 스텝들이 애니메이션이 처음이라 신경이 곤두서 있었을 거 같다.
스텝들 모두가 애니메이션 촬영이 처음이라 재밌는 순간들도 많았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회차가 길어서 재밌던 순간들이 많았다. 매 회차가 디졸브여서 모든 스텝들이 잠과 사투를 벌였다. 한번은 PD님이 식사를 준비하다가 잠이 드는 바람에 밥을 못 먹을 뻔했다. (웃음) 아! 그리고 촬영 내내 노래를 틀고 진행을 했는데, 노래란 노래는 정말 다 들어 본 거 같다. 체력적으로는 촬영이 힘들었고 후반작업은 시간이 부족해 마음이 버거웠다.
학교 내에서 진행되는 영화제작 상영회에서 ‘우찾사’가 상영되었다. 본인의 첫 연출작을 큰 스크린으로 감상한 기분이 어땠나.
영화가 상영되자마자 심박수가 150까지 뛰어서 상영 내내 애플워치에서 심호흡하라는 알림이 떴었다. (웃음)
무비 블록(독립영화, 단편영화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에서도 온라인 상영이 되었었는데 기억에 남는 감상평이 있었나.
한 관객분께서 ‘현실에서는 물을 싫어하는 고양이지만, 물고기를 위해서 기꺼이 어항을 뒤집어쓰고 함께 바다에 뛰어든다. 말도 안 되는 이 이야기를 가능하게 만드는 건 “사랑”이라고 말해주는 듯했다.’라는 감상을 남겨주셨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알아주신 것 같아 연출자로서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우찾사’는 보편적인 사랑이라는 감정과 더불어 결핍과 성장을 다루고 있다. 이를 나타내는 중심 캐릭터인 고양이의 감정선 또한 섬세한데 본인의 경험과 관련이 있을까.
영화라는 것 자체가 경험을 토대로 연출하게 되는 것 같다. 물론 완벽하게 나의 경험이라고는 못하지만, 성장은 결핍으로부터 시작한다고 믿는다.
고양이의 마음을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중요하게 설정했던 장치가 있다면.
어항 속 물을 집안으로 옮기고 그 물을 바다로 옮기고 결국 어항을 물고기가 쓰게 되는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고양이가 물고기에게 전하는 사랑 즉 모든 것을 내어주는 과정인 듯 보였으면 하는 의도를 가지고 고양이의 감정선과 연결하여 연출했다.
사랑에 빠지기 전, 물고기를 처음 본 순간 고양이는 어떤 감정이었을까.
호기심을 느끼지 않았을까. 상대가 궁금해지기 시작하면 사랑으로 발전하는 것 같다.
고양이는 모든 것을 내어주었지만 끝내 물고기와 이별을 하게 되고 고양이에게 새로운 인연이 찾아온다. 고양이의 마지막 선택을 앞두고 영화는 끝이 난다. 관객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사랑의 성공과 실패를 통해 성숙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핍 속에서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모습과 경험을 통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성숙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모든 것을 내어준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가.
모든 것을 내어주는 사랑은 이기적일 수도 있고 헌신적일 수도 있을 거 같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상대에게 퍼주는 사랑은 과연 성숙한 걸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실은 그런 사랑을 아직 안 해봐서 모르겠다. (웃음)
고양이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감독으로서 바라는 닫힌 결말이 있다면.
고양이는 다시 사랑을 도전했을 거라 믿는다. 그 끝이 어떻든 사랑 앞에서 주저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고양이의 집이 심해로 가라앉으며 채도의 변화가 생긴다.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초반에는 바다를 최대한 예쁘게 보여주기 위해 에메랄드 색으로 표현했다. 사랑을 아낌없이 퍼주는 게 아름답기만 한 줄 알았지만, 감정이 깊어질수록 관계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점점 어두운 심해 속으로 빠지는 장면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
‘우찾사’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설정할 때 영향을 받았던 영화가 있나.
사랑을 물로 표현한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을 키 이미지로 설정했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만 놓고 봤을 때 형태가 중요하지 않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영화 속 캐릭터를 보면 성별도 나타나지 않고 목소리도 드러나지 않는다.
감독님께서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신다고 들었다. 그 이유만으로 주인공을 고양이로 설정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캐릭터를 물고기와 고양이로 디자인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고양이를 좋아하다 보니 여러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는다. 그중 고양이는 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어항을 좋아한다는 흥미로운 정보를 접수했다. 어항이 고양이에게 TV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것이다. ‘고양이에게 어항 속 세계는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고 이 지점이 흥미롭게 다가와 완전히 다른 고양이와 물고기를 캐릭터 소재로 사용하게 되었다.
‘우찾사’ 이후 감독님의 두 번째 연출작 ‘수심이 깊어 위험하오니 들어가지 마시오’ 또한 제목이 길다. 이유가 뭔지, 감독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인가.
어쩌다 보니 두 영화 다 제목이 길어졌다 ‘우찾사’는 아무래도 대사가 없다 보니 제목에 하고자 하는 말을 쓰게 되었다. 수심이 영화 또한 주요 캐릭터 (물귀신)가 말이 없다 보니 캐릭터의 심정을 대변하는 느낌의 제목을 짓게 되었다. 물론 대사를 쓰는 능력이 부족한 것도 있고, 대사가 많은 걸 선호하지 않아 제목에 하고 싶은 말을 넣는 거 같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이제 막 졸업을 해서 계속 고민을 하고 있다. 시간을 들여 애니메이션 공부를 조금 더 해보고 싶다. 그 이후에 환경이 된다면 다음에는 꼭 사랑이 넘쳐나는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 전 작품들의 캐릭터들에게 너무 아픔을 준 거 같아서 사랑하고 사랑받는 캐릭터를 만들어보고자 한다. 머릿속에 그려놓은 귀여운 강아지가 있다.
후속작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말했다. 감독님이 생각하는 사랑은 뭔가.
연인 간의 사랑이 아니어도 우정, 애증 등 모든 관계를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정확히 정의를 내리긴 힘들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사랑이 뭔지 찾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 영화를 계속 찍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혹은 추천하고 싶은 애니메이션이 있는지
박재범 감독님 작품을 정말 좋아한다. 더미: 노 웨이 아웃, 빅 피쉬를 추천하고 싶다. 짧은 단편 애니메이션이지만 큰 힘이 느껴졌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는 순간들은 정말 소중한 거 같다.